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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을 삼키는 AI, 기후테크의 판도를 다시 짜다

전력을 삼키는 AI, 기후테크의 판도를 다시 짜다

You Kim

2025. 5. 27.

'전력=성장': AI 시대의 새로운 자원 전쟁

AI의 급부상으로 전력 수요는 수년간의 정체기를 깨고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데이터 센터의 확장과 AI 연산 능력 강화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빅테크 기업들은 전력 생산 능력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다. 과거에는 효율적인 컴퓨팅 성능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얼마나 안정적이고 대규모의 전력을 조달할 수 있는지가 AI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된 것이다.

메타(Meta)가 최근 캔자스와 텍사스에서 650메가와트(MW) 규모의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한 것은 이러한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미 12기가와트(GW) 이상의 재생에너지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타는 AI 운영 확대를 위해 전력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는 태양광 발전이 신속한 배포와 저렴한 비용이라는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텍사스와 같은 지역은 풍부한 일조량, 빠른 허가 절차, 신속한 그리드 연결이라는 삼박자를 갖춰 태양광 개발의 핵심 기지가 되고 있다. 태양광 발전이 건설 완료 전에 전력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은 데이터 센터 운영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태양광만으로는 AI의 끝없는 전력 갈증을 채우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AI 데이터 센터는 24시간 7일 내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빅테크 기업들은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전력원인 원자력, 특히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에 눈을 돌리고 있다. 구글이 카이로스 파워(Kairos Power)와 2035년까지 약 500MW의 전력을 구매하기로 약속하고, 아마존의 기후 서약 펀드(Climate Pledge Fund)가 X-에너지(X-Energy)에 7억 달러를 투자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샘 올트먼의 오클로(Oklo) 투자와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TerraPower) 설립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이들은 기존 대형 원자로의 단점을 극복하고 대량 생산을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SMR의 잠재력에 베팅하고 있다. AI의 성장이 원자력 산업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에너지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빅테크, 기후 산업을 장악하는 새로운 투자 루트

흥미로운 점은 AI가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후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탄소 제거와 같은 직접적인 기후테크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ESG 경영'이라는 명분적 차원을 넘어, AI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투자이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인도의 탄소 제거 스타트업인 알트 카본(Alt Carbon)이 1,200만 달러의 시드 투자를 유치한 사례는 이러한 트렌드를 보여준다. 폐바위 분말을 농지에 살포하여 탄소를 수천 년 동안 가둬두는 '강화된 암석 풍화(enhanced rock weathering)' 기술을 개발한 알트 카본은, 스트라이프(Stripe), 알파벳(Alphabet), 메타(Meta), 쇼피파이(Shopify), 맥킨지(McKinsey) 등이 주도하는 10억 달러 규모의 선구매 약정인 '프론티어(Frontier)'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이는 빅테크 기업들이 단순한 재생에너지 구매를 넘어, 직접적인 탄소 제거 기술에 투자함으로써 자신들의 탄소 발자국을 상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AI의 전력 소비로 인한 탄소 배출량 증가에 대한 책임 의식과 함께, 고품질 탄소 크레딧을 확보하려는 비즈니스적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기업과 AI 스타트업의 기묘한 교차점

AI의 전력 수요 증가는 전통적인 에너지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AES와 같은 전력 생산 기업들은 메타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와의 대규모 계약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SMR 개발 기업들은 빅테크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에너지 기업과 AI 스타트업 간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교차점은 다음과 같은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 빅테크의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이 기후테크 발전을 가속화하는 긍정적인 측면만 있을까? 혹은 AI의 전력 소비가 기후 변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그 해결책마저도 빅테크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는 위험은 없을까? 알트 카본과 같은 스타트업이 탄소 제거 크레딧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은 기후 변화 대응의 본질적인 목표와 빅테크의 상업적 이윤 추구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결론: AI, 에너지, 기후테크

결론적으로, AI는 기술 트렌드를 넘어, 전력 인프라 투자를 가속화하고 기후테크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거대한 촉매제가 되고 있다. 이는 과거에는 각기 독립적이었던 AI-에너지-기후테크 산업이 이제 하나의 상호 의존적 비즈니스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가 성장할수록 전력 수요가 늘고, 이 전력을 친환경적으로 조달하려는 과정에서 기후테크 투자가 활성화되는 선순환(혹은 의존적 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삼각 동맹의 핵심은 AI의 성장 동력이자 동시에 환경적 책임이 전력과 기후테크 분야에 대한 빅테크의 직접 투자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에너지 산업과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빅테크가 미래 핵심 인프라와 친환경 기술의 주도권을 동시에 거머쥐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