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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 말고, 요약해줘” – AI 시대, 콘텐츠는 감상될 수 있을까?

Chaey Rhee

2025. 5. 19.

콘텐츠는 더 이상 감상되지 않는다. 그저 소비되고, 요약되고, 계량된다. 우리는 지금 감상 없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2025년 5월 10일, Spotify는 '모든 팟캐스트에 재생 수를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청취자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크리에이터들은 곧장 반발했다. '재생 수가 많은 쇼만 더 노출되는 구조가 고착될 것'이라 우려했다. 이에 Spotify는 5월 17일 수정안을 내놨다. 특정 기준(5만 회 이상)을 넘은 팟캐스트에 한해, 10만·100만 단위로만 재생 수를 표시하겠다는 것이다.

콘텐츠를 콘텐츠로서 보지 않고, ‘숫자’로 본다. 수치화된 인기도는 그 자체로 신뢰를 갖는다. 아무도 듣지 않은 콘텐츠를 내가 들어야 할 이유는 적다. 우리는 YouTube에서 좋아요 수를 보고 영상을 고르며, Instagram에선 팔로워 수를 보고 프로필을 판단한다. 이제 그 같은 게임의 법칙이 팟캐스트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흐름은 소비자 쪽에서도 또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Microsoft의 CEO Satya Nadella는 최근 Bloomberg와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팟캐스트를 ‘듣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출근길마다 팟캐스트 트랜스크립트를 ‘Copilot’에 업로드하고, AI와 대화하며 핵심 내용을 요약한다. '이게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팟캐스트는 더 이상 청각적 몰입의 대상이 아니다. ‘듣는 콘텐츠’가 아닌 ‘대화형 정보 덩어리’로 바뀌었다.

이 두 현상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콘텐츠는 감정의 여백보다는 정보의 밀도로 평가된다. 크리에이터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 측정되기 위해 창작하고, 소비자는 몰입이 아닌 압축된 요약을 선호한다. 콘텐츠는 점차 기능성 데이터의 반가공물 형태가 되어간다.

물론 이 변화가 전적으로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수치화는 마케팅 효율을 높이고, 요약은 시간을 아낀다. 그러나 이 모든 이면에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콘텐츠를 ‘감상’했는가?”
그저 재생 버튼을 누른 것이 아니라,

숫자도, 요약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이야기를 온전히 느껴본 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