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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5. 27.

2026년 5월 25일, 딜리버리 히어로의 주가가 장중 12% 급등하며 18개월 만에 최고가인 37.85유로(시가총액 115억 유로)를 기록했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우버가 제시한 주당 33유로의 인수가를 거절했던 딜리버리 히어로였지만, 이번에는 우버가 일부 대주주들에게 주당 38유로라는 두 번째 제안을 내밀었다는 소식이 시장에 퍼지면서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몰렸다.
같은 날 블룸버그는 딜리버리 히어로의 최대주주였던 프로서스(Prosus. 내스퍼스 그룹의 투자회사)가 EU 당국에 딜리버리 히어로 지분 강제 매각 의무 해제를 요청하는 청원을 진행 중이라고 단독 보도했다.
과거 이 시장은 내스퍼스와 소프트뱅크(비전펀드)가 각각 강력한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며 합병과 대규모 투자를 주도해 왔다. 이제는 소프트뱅크의 대표적 피투자사이자 시장의 오랜 강자인 우버와 같은 모빌리티·물류 빅테크 기업이 직접 피투자사의 지분을 인수하며 시장을 재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본 확장 경쟁에서 빅테크의 직접적인 지배력 및 오퍼레이션 경쟁력 강화로 시장의 주도권이 이동하고 있다.
2017-2018
2017년 5월 12일, 텐센트 초기 투자로 막대한 현금을 거머쥔 남아공의 글로벌 IT·미디어 그룹 내스퍼스가 독일의 배달 플랫폼 회사 딜리버리 히어로에 3.87억 유로를 투자했다. IPO 직전 라운드였고 지분은 10.6%였다. 한 달 뒤 딜리버리 히어로는 프랑크푸르트에 상장했고, 9월에는 Rocket Internet으로부터 지분 13%를 추가로 사들이며 지분율 23.6%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내스퍼스의 CEO 밥 반 다이크(Bob van Dijk)는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 운영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음식 주문 및 배달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테제를 내세웠다. 2018년 투자자 로드쇼에서는 배달 시장을 ‘생애 가장 큰 기회’로 정의하며 인도의 스위기(Swiggy), 브라질 아이푸드(iFood)의 모회사 모빌(Movile)에 투자하는 등 전세계에 걸쳐 포트폴리오를 넓혀갔다. 목적지 자체가 처음부터 음식 배달 버티컬이었던 셈이다.
거의 같은 시기, 손정의가 이끄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역시 자신들만의 성공 방정식에 따라 음식배달과 모빌리티 시장에 막대한 자본을 투하하고 있었다.
2018년 1월 18일, 비전펀드 컨소시엄은 12.5억 달러의 투자를 통해 우버 지분 15%를 확보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어 두 달 뒤인 3월에는 우버이츠의 미국 내 직접 경쟁자인 도어대시(DoorDash) 시리즈 D 라운드에 5.35억 달러를 리드 투자했다.
손정의는 배달을 독립된 비즈니스가 아닌, 사람과 물류가 이동하는 네트워크의 하위 카테고리로 바라봤다. 그는 배달 앱이 아닌 모빌리티와 물류 인프라를 쥔 지역별 1위 기업들에 베팅했다. 손정의는 우버, 중국의 디디(Didi), 동남아의 그랩(Grab), 인도의 올라(Ola) 등 각 지역 라이드헤일링 선두 주자들의 지분을 비전펀드 산하로 결집시켰다. 글로벌 모빌리티 주자들을 하나의 자본 우산 아래 모아 소모적인 치킨게임을 통제하고 영역을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평소에는 사람을 나르던 차량과 드라이버 네트워크를 식사 시간에는 음식 배달에 투입하면(우버이츠, 그랩푸드), 모빌리티의 규모의 경제가 배달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될 것이라 보았다. 한국 시장에서 쿠팡을 통해 쿠팡이츠로 영역을 확장한 것 역시 유사한 맥락이었다.
2017-2018년 사이 음식 배달 시장에 본격 진입한 두 거대 자본은 각자의 투자 철학에 따라 판이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내스퍼스는 딜리버리 히어로(유럽-신흥국)와 아이푸드(브라질) 등 오직 음식 배달만을 전문으로 하는 '독립형 버티컬 플랫폼'들을 사 모았고, 소프트뱅크는 우버, 디디, 그랩 등 글로벌 모빌리티 인프라를 기반으로 도어대시(미국) 같은 지역별 배달 강자들을 편입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2019
2019년 12월 서울, 딜리버리 히어로가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을 약 4.7조 원에 인수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한국 스타트업 사상 최대 규모의 인바운드 딜이었다.(2020년 12월, 공정위가 1, 2위 플랫폼 동시 소유 불가를 이유로 딜리버리 히어로에 요기요 매각을 지시하면서 배민 인수를 조건부 승인했다.)
당시 김봉진 의장은 ‘거대한 일본 자본과 글로벌 IT 기업들의 잠식에 맞서기 위한 생존 전략’이라고 명분을 밝혔다. 비전펀드는 2015년 쿠팡에 10억 달러를 투하하며 한국 시장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고, 그 압도적인 자본력을 바탕으로 쿠팡이츠가 배달 시장을 거세게 잠식하던 시점이었다.
2019년은 음식배달업의 본질이 전단지를 대체하는 주문 중개에서, 쿠팡이츠가 촉발한 단건 배달 중심의 라스트마일 물류로 넘어가던 변곡점이었다. 이는 배달 플랫폼의 단위 경제성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마케팅비 수준을 넘어 주문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움직여야 하는 거대한 라이더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이들의 배차 유동성을 통제하기 위해 매달 수백억 원의 라이더 보조금과 관제 시스템에 현금을 태워야 하는 새로운 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궤도에 진입하면 5-7년의 펀드 만기에 쫓기는 로컬 VC이나 PE의 호흡으로는 끝을 보기 힘들었다. 배민은 출혈 경쟁을 버텨낼 장기 투자자가 필요했다.
핵심은 당시 딜리버리 히어로의 최대주주가 지분 23.6%를 쥔 내스퍼스였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음식배달 시장 1위 플랫폼 배민이 내스퍼스의 음식 배달 버티컬 연합에 편입되었다. 이로써 한국 시장은 소프트뱅크 진영(쿠팡-쿠팡이츠) 대 내스퍼스 진영(딜리버리 히어로-배민)이라는 두 거대 자본이 각자의 챔피언을 내세워 마주 보는 대리전 구도가 형성되었다.
2022-2025
먼저 균열이 간 쪽은 소프트뱅크였다.
2022년 여름, 비전펀드가 2.93조 엔이라는 천문학적인 역대 최대 손실을 기록하자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가 선택한 카드는 포트폴리오 내 가장 현금화하기 쉬운 우량 자산의 매각이었고, 그 최전선에 우버가 있었다. 2021년부터 야금야금 지분을 줄여오던 소프트뱅크는 2022년 8월, 우버의 잔여 지분을 전량 매각하며 판을 떠났다. 미국 배달 시장의 핵심 축이던 도어대시 지분 역시 비슷한 호흡으로 청산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프트뱅크의 품에서 벗어난 우버는 2022년 후반부터 본격적인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기업가치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소프트뱅크가 남긴 지역별 과점 체제 덕분에, 우버는 독자적인 현금 창출력을 갖춘 시장 통합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체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한편, 2025년 2월 내스퍼스는 JET 인수를 발표한다. 영국 1위 Just Eat, 독일 1위 Lieferando, 네덜란드 1위 Takeaway.com가 통합한 회사를 인수해서 유럽 챔피언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EU는 6개월 검토 끝에 인수는 승인하되, 데드라인은 2026년 8월까지 프로서스가 보유한 27.4%의 딜리버리 히어로 지분의 대부분을 매각하라는 조건이었다. 잔여 지분에 대해서도 의결권 행사 금지, 이사 추천 금지, 일정 기간 영향력 행사 자체가 금지되었다. JET와 딜리버리 히어로가 오스트리아·불가리아·이탈리아·폴란드·스페인에서 직접 경쟁 중이라는 이유였다.
이로써 내스퍼스는 딜리버리 히어로 지분을 무조건 팔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우버가 최근 딜리버리 히어로 이사회에 공격적인 인수가를 제시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2026
2026년 4월 17일, 프로서스가 딜리버리 히어로 지분 4.5%를 우버에 매각했다. 우버는 이미 2024년에 딜리버리 히어로 신주 3억 달러어치를 인수해 들어와 있던 상태였고, 거기에 4.5%가 추가됐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프로서스가 또 지분 5%를 홍콩계 행동주의 펀드 Aspex에 매각했다. 이로써 지분율은 프로서스 17%, Aspex 14%가 되어 Aspex가 2대 주주로 부상했다.
홍콩계 행동주의 펀드 Aspex는 2025년 말부터 지분을 9.2%까지 누적해온 상태였고, 2026년 3월부터 8주에 걸쳐 딜리버리 히어로에 공개적인 요구를 해오고 있었다. 딜리버리 히어로는 MENA 지역이 그룹 GMV의 30%에서 EBITDA의 60%를 만드는 동안 나머지 지역들에서는 현금을 까먹고 있었다. 거기에 15억 유로의 법적 충당금이 별도로 회사를 누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Aspex은 핵심 지역만 남기고 나머지 자산은 매각하도록 회사를 압박하고 있었다. 3월에 Foodpanda Taiwan을 6억 달러에 Grab에 매각하며 ‘key first step’이라고 발표했을 때에도 Aspex의 반응은 ‘자산 가치가 이미 훼손되기 전에 더 좋은 조건으로 더 많이 팔았어야 했다’였다
5월 12일, 딜리버리 히어로의 창업자이자 CEO 니클라스 외스트버그(Niklas Östberg)가 사임 의사를 발표했다. 다만 후임 CEO 서치는 연말까지로 잡혔고, 그 사이의 배민을 포함한 자산 매각은 외스트버그 본인이 주도하기로 했다. 회사를 15년간 키운 당사자이고, 자산 가치와 잠재 인수자 네트워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우버는 5월 18일 추가 매수와 옵션을 통해 19.5% + 5.6% 옵션을 확보하여 마침내 딜리버리 히어로의 최대주주가 됐다. 그리고 닷새 뒤인 5월 23일 토요일에 딜리버리 히어로 주식 1주당 33유로, 5월 25일에 주당 38유로를 제안했지만 거부당한 것이다.
우버가 딜리버리 히어로 독일 본사를 인수하는 시도와, 딜리버리 히어로가 한국 자회사인 배민을 매각하려는 시도가 동시에 굴러가고 있었던 것인데, 딜리버리 히어로 입장에서도 배민 매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지다. 우버에겐 부채의 늪에 빠진 딜리버리 히어로에게 직접 자금을 수혈하는 대신 배민 카브아웃하는 방식이 더 나은 선택지일 수 있다. 배민을 제값에 사주어 그 매각 대금으로 딜리버리 히어로의 숨통은 틔워주되, 글로벌 통합에 필요한 핵심 자산은 우버의 통제 아래로 가져오는 방식이다.
우버는 이 딜에서 매수자인 동시에 간접 수혜자다. 우버가 보유한 딜리버리 히어로 지분 덕분에 딜리버리 히어로가 배민을 8조 원에 매각한다 해도, 우버 입장에서는 그 매각 대금의 약 20%가 결국 자신의 지분 가치로 환원되는 셈이다.
이 한 달 동안 일어난 일들은 지난 9년 간의 배달 업계에서 일어난 일의 유산이다. 손정의가 키웠던 회사가, 손정의가 떠난 자리에서, 내스퍼스가 떠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