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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한 의무

아름다움에 대한 의무

Roy Kang

2026. 1. 9.

생성형 AI는 확률적으로 평균적인 결과물을 생성하며 ‘평범함’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그저그런 영혼 없는 결과물들은 사람들에게 공허함과 피로감을 남긴다. 평범한 것들이 무한히 증식하는 시대엔, 창작자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의무’가 따른다.

스타트업 세계에서도 기능과 유틸리티가 지배하던 기술의 시대가 저물었다. 바야흐로 심미적 집착과 철학적 태도가 프로덕트의 가치를 결정하는 미학의 시대(Aesthetic Era)로 들어서고 있다.

Feature Economy(기능 경제)의 붕괴

기능은 범용화되었다. AI 코딩이 상식인 세상에서 기능적 구현은 게임에 참여하기 위한 입장권일 뿐, 더 이상 승리를 보장하는 자산은 아니다. Cursor나 Lovable 같은 도구는 경쟁자가 주말 동안 당신의 모든 기능을 복제할 수 있게 만들었다. 동일한 인프라 위에서, 동일한 속도로, 동일한 기능을 제공하는 레드 오션에서 사용자가 굳이 당신을 선택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프로덕트는 두 개의 개념으로 나뉜다. 한쪽에는 효율성의 논리로 찍어낸 Industrial Product가 있다. 이는 AI를 통해 비용을 깎고 배포 속도를 높인 결과물로, 기능적으로는 작동할지 몰라도 사용자의 기억 속에서는 잊혀질 운명이다.

다른 한쪽에는 Artisanal Product가 있다. 이들은 생성 AI가 제시하는 평균을 거부하고, 창작자의 고집스러운 취향을 모든 곳에 심어놓는다. 사치스러운 인터랙션, 비표준적인 UI 등 사람들이 비효율이라 부르는 요소들이 고유의 물성을 만들어낸다.

당신의 프로덕트가 일주일 만에 복제될 수 있다면, 그 가치는 기능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취향이 새로운 해자다

왜 취향이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가? 기능이 범용화된 시장에서는 브랜드가 유일한 레버리지이기 때문이다. 이미 기능적으로 평준화된 패션 시장에서 고유한 세계관을 구축한 브랜드가 생존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더 많은 주머니가 달렸기 때문이 아니라, 취향이라는 필터를 통해 구현된 세계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이 더 이상 유틸리티를 파는 것이 아니라, 취향을 담는 그릇을 팔고 있음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면, 취향은 때론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AI로 생성된 프로덕트가 더 범용적으로 최적화될수록, 취향이 만든 '의도된 비효율성'은 역설적으로 사치재의 증거가 된다. 쿼츠 파동 이후에도 효율적인 쿼츠 시계보다 기계식 시계가 압도적인 가치를 지니듯, 기발함과 특수성, 그리고 독특한 선택들이 묻어나는 프로덕트는 AI가 복제할 수 없는 인간의 흔적을 증명한다.

과거 하드웨어가 제약되어 있던 시절에 최적화는 생존 조건이었다. 그러나 무한히 기능적 복제가 가능한 오늘날 클라우드 환경에서, 결코 복제될 수 없는 유일한 자산은 창작자의 구체적이고 편집증적인 취향뿐이다.

여기서 명확히 해야 할 사실이 있다. 좋은 취향이란 결코 주관적인 영역이 아니며, 엄격하게 객관적인 개념이다. 많은 이들이 취향을 개인적인 기호와 혼동하며 “나는 빨간색, 너는 파란색” 식의 호불호 문제로 치부한다. 

프로덕트의 세계에서 취향은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의 감도에 관한 문제다. 좋은 취향을 가진다는 것은, 남들이 적당하다고 느끼는 지점에서 미세한 노이즈와 불협화음을 감지해내는 인지 능력을 의미한다. 

평균은 필연적으로 뭉툭하다. 탁월한 창업자의 취향은 그 뭉툭한 평균을 거부하고, 픽셀 단위까지 파고들어 날카로움을 만드는 행위다. 즉 좋은 취향이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디테일을 볼 수 있는 감각이자, 그것이 달성될 때까지 타협하지 않는 집요함이다.

아름다움은 일차적으로 고도의 시각적 완성도를 뜻한다. 그러나 진정한 아름다움은 단순한 겉치장이 아니며, 그렇다고 기능적 최적화의 결과물도 아니다. 취향이 만드는 아름다움이란 기능적 필요를 아득히 초과하는 잉여적인 디테일이다. 우리는 기능적으로 완벽한 물건에서 편리함을 느끼지만, 미학적으로 압도적인 물건 앞에서는 경외감을 느낀다.

미학적 독재와 아름다움에 대한 의무

AI가 야기한 평범함의 인플레이션이 문제이고, 취향이 만드는 아름다움이 해결책라면, 그 방법론은 ‘미학적 독재’다. 창작자가 자신의 타협 없는 미적 비전을 고객에게 강요하는 행위

이 독재의 원형은 스티브 잡스다. "사람들은 보여주기 전까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그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들은 끊임없는 피드백 루프에 의존하는 Lean Startup를 거부한다. 사용자 피드백은 문제를 식별하는 데이터일 뿐, 해결책을 도출하는 데는 무용한 것으로 간주한다. 고객에게 어설픈 커스터마이징의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고민할 필요가 없을 만큼 완벽하게 조율된 미학적 밀도를 제공한다. 

그들은 민주주의적인 환경이 평범함을 낳는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미학적 탁월함은 필연적으로 독재자를 필요로 한다.

결국 프로덕트가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는 Cult Layer다. 이곳은 기능이 아닌 세계관을 판다. 코드가 아닌, 그 세계관에 매료된 사람들의 헌신이 우리를 지켜줄 유일한 해자이기 때문이다.

AI가 평범함을 무한 복제하는 시대, 인간에게는 그것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생산할 엄중한 의무가 주어진다. 만약 우리가 이 치열한 취향의 배양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단지 물량을 앞세운 평범함이 새로운 엘리트로 군림하는 끔찍한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프로덕트는 그저 기능적이기만 한가? 

그렇다면 포기하라. AI가 당신의 기능을 복제할 것이다. 당신보다 더 빠르고, 더 싸고, 버그 없이 해낼 것이다. 당신은 코딩으로 기계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만약 당신의 프로덕트가 아름답다면—사용자의 감정을 건드리고, 철학이 뚜렷하며, 지극히 인간적인 독재를 강요하고 있다면—당신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아니, 오직 당신에게만 기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