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테크

VC

1인 미디어 말고 1인 SaaS: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2.0

1인 미디어 말고 1인 SaaS: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2.0

You Kim

2025. 11. 26.

팔로워를 가진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제품을 가진 크리에이터가 되고 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여전히 '유튜버', '인플루언서', '1인 미디어' 같은 단어를 습관처럼 쓴다. 하지만 이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혼자 카메라 앞에 서서 영상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 크리에이터는 실제로 앱과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사실상 '1인 SaaS 회사'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자본시장도 크리에이터를 직접 투자 대상인 창업자로 보기 시작했다. 


물리치료사에서 PT SaaS 창업자로: Rebuildr의 메시지

호주 출신 물리치료사 Tayla Cannon은 2023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국 도시로 이주해 정규직 일을 시작했다. 낮에는 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퇴근 후에는 허리 통증과 재활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처음엔 그저 '내 머릿속을 인터넷에 올리는 정도'의 사이드 프로젝트였지만,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3만 명 이상으로 늘었고, Cannon은 이를 기반으로 허리 통증과 부상 회복을 돕는 온라인 재활 코칭 프로그램 Athletic Rebuild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스토리다. 전문가가 크리에이터가 되고, 크리에이터가 개인 비즈니스를 연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 다음이다. Cannon은 '나 혼자 몸으로 뛰는 비즈니스로는 더 이상 확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재활 전문가들이 자신의 온라인 비즈니스를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PT 소프트웨어, Rebuildr를 만들기 시작했다. Rebuildr는 재활 전문가가 온라인에서 자기 클리닉을 운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도구다. 환자 프로그램 설계, 상담 관리, 의료 정보 보호 기준(HIPAA) 준수 같은 복잡한 뒷단을 대신 처리해준다.이 회사에 Slow Ventures의 6,000만 달러 규모 Creator Fund가 110만 달러 시드 투자를 집행했다. 여기서 포인트는, VC가 투자한 대상은 '팔로워 13만 명짜리 물리치료사'가 아니라, 그녀의 팬 위에 올라가는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라는 점이다. 즉, 자본의 관점에서 Cannon은 1인 미디어가 아니라 도메인 전문성을 가진 SaaS 창업자인 것이다.

한편, Replika 창업자 Eugenia Kuyda는 새 프로젝트 Wabi로 바이브코딩 툴을 만들고 있다. 누구나 'AI 테라피 앱 만들어줘' 같은 프롬프트만 입력하면 미니 앱을 생성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앱을 좋아요·댓글·리믹스로 주고받을 수 있는 소셜 플랫폼이다. 코드는 한 줄도 보지 않는다. '코딩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자기 일상 문제를 해결하는 앱을 바로 만들 수 있게 하려 했다'는 설명이 붙는다.

쉽게 말해 Rebuildr는 '크리에이터가 SaaS까지 개발한 사례'이고, Wabi는 '코드를 모르는 크리에이터도 앱을 만들 수 있는 인프라'다. 이 둘이 만나면, 팔로워와 도메인 전문성을 가진 누구든 마이크로 SaaS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완성된다. 이렇게 1인 미디어는 자연스럽게 1인 SaaS 회사로 넘어간다.


크리에이터를 고객으로 삼는 인프라: Agentio와 beehiiv

Rebuildr가 '크리에이터 본인이 만든 SaaS'라면, 반대편에서는 '크리에이터를 B2B 고객으로 삼는 SaaS 인프라'가 동시에 올라오고 있다.

Agentio는 광고·브랜드 협업 영역에서 크리에이터와 브랜드를 매칭하는 마켓플레이스로 출발해, 최근 Forerunner가 리드한 4,000만 달러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다. 누적 투자금 5,600만 달러, 기업가치 3억4,000만 달러다. 이 회사는 AI로 크리에이터와 브랜드를 매칭하고, 캠페인 매니지먼트와 성과 측정, 브랜드 세이프티를 자동화하면서, 브랜드 입장에서는 '크리에이터 캠페인 운영 SaaS',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는 '브랜드 딜 수익을 키워주는 백오피스'를 제공한다.

뉴스레터 플랫폼 beehiiv는 더 노골적으로 '크리에이터 OS'를 지향한다. 최근 대규모 업데이트에서 이들은 'AI 기반 웹사이트 생성', '실시간 분석', '디지털 제품 판매', '팟캐스트 호스팅', '수수료 없는 유료 구독', '광고 네트워크'까지 한 번에 묶어 발표했다. 뉴스레터 툴이 아니라, 오디언스·브랜드·수익의 소유권을 크리에이터 본인에게 돌리는 올인원 스택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 사례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더 이상 '미디어 산업'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데이터 산업이라는 사실이 보인다. 크리에이터는 이 생태계에서 두 가지 위치를 동시에 점유한다. 자신이 직접 SaaS를 만드는 창업자이거나, 누군가가 만든 SaaS의 핵심 고객이다.


유튜버는 이미 ‘버티컬 미디어 컴퍼니’다

유튜버의 수익은 '광고 의존'에서 멀어지고 있다. 유튜버들은 플랫폼 의존적인 광고 수익의 변동성을 인식하고, 브랜드, 오프라인 매장, 소비재 사업 등 평행 비즈니스를 키워 '버티컬 미디어 컴퍼니'로 진화하고 있다.

MrBeast는 각종 스낵 브랜드와 버거, 테마파크, 데이터 분석툴까지 운영하며, 콘텐츠 사업은 적자를 보더라도 라이선스, 브랜드 비즈니스에서의 이익으로 전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구조를 구축했다. Emma Chamberlain은 유튜브 채널보다 커피 브랜드 Chamberlain Coffee의 비즈니스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 Logan Paul과 KSI의 에너지 드링크 Prime은 연 매출 10억 달러를 넘겼다.

이들의 공통점은 크리에이터라는 신분을 유지한 채, 브랜드와 프로덕트를 중심에 둔 버티컬 비즈니스를 만든다는 것이다. 채널은 마케팅 수단이고, 비즈니스의 핵심은 프로덕트에 있다. Rebuildr처럼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케이스와, MrBeast처럼 소비재 브랜드를 키우는 케이스는 서로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둘 다 '1인 미디어'라는 프레임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크리에이터의 수익 안정성과 자산 가치는 광고가 아니라 직접 소유한 제품과 데이터에서 나온다.


'1인 미디어'에서 '1인 SaaS 회사'로

지금의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이렇게 정의하는 편이 정확하다.

크리에이터는 팔로워와 채널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오디언스와 제품, 데이터를 가진 1인 회사다. 채널은 그 회사를 위한 마케팅 수단에 가깝다.

Rebuildr는 크리에이터가 직접 만든 소프트웨어이고, Agentio와 beehiiv는 크리에이터를 고객으로 삼는 소프트웨어다. Threads와 Spotify는 크리에이터의 이야기와 권리를 드러내는 인터페이스를 구축 중이다. YouTube 크리에이터들은 광고가 아닌 브랜드·오프라인·소비재로 수익 구조를 옮기고 있다. 이 상황에서 '1인 미디어'라는 말은 크리에이터를 지나치게 축소한다. 


우리가 읽어야 할 신호

첫째, 크리에이터라면 '다음 영상/다음 게시물'보다 '내 오디언스가 매일 쓰게 될 작은 툴이나 서비스가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한다. PT·공부·투자·뷰티·육아·커리어 등 어떤 도메인에서든, Rebuildr 수준의 복잡성이 아니어도, 체크리스트·플래너·간단한 예약/관리 도구 같은 마이크로 SaaS는 충분히 가능하다. 현재의 노코드·AI 툴 환경을 고려하면, 이는 더 이상 개발자만의 영역이 아니다.

둘째, 플랫폼에 과도하게 종속된 수익 구조는 리스크다. beehiiv가 강조하듯, '오디언스와 브랜드, 수익의 소유권'을 조금씩이라도 되찾아오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 이메일 리스트, 자체 결제·멤버십 시스템, 자체 커뮤니티 공간은 단지 부가 옵션이 아니라, 사업 지속성을 담보하는 안전장치에 가깝다.

셋째, 국내 플랫폼과 VC의 관점도 수정이 필요하다. 네이버·카카오·대형 커머스가 크리에이터를 여전히 트래픽 공급원 정도로만 본다면, Meta와 Spotify 등 글로벌 플랫폼이 제공하는 권리 보호·데이터·툴 레벨의 인프라를 경험한 크리에이터를 붙잡기 어렵다. 국내 VC 역시 '크리에이터 출신 창업자'를 인플루언서 비즈니스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수요와 커뮤니티, 문제 정의 능력을 가진 도메인 창업자로 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