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테크
Chaey Rhee
2026. 5. 13.

어떤 회사가 다른 회사에 20억 달러를 지분 형태로 투자한다. 그리고 같은 분기에 그 다른 회사가 다시 첫 회사로부터 100억 달러 이상의 제품을 사겠다는 장기 계약을 체결한다. 두 거래는 별개의 계약서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첫 회사의 재무제표에서 20억 달러는 투자자산으로 분류되고, 100억 달러는 향후 분기의 장래매출 내지는 수주잔고로 인식된다.
오늘날 AI 산업을 주도하는 칩 제조사, 하이퍼스케일러, 그리고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사들 사이에서 이러한 자본 흐름이 나타난다. 막대한 자본이 흐르는 AI 인프라 사이클 속에서 공급자의 자본이 고객을 거쳐 다시 공급자의 매출로 인식되는 자기 순환적 거래가 팽창하고 있다. 자본 시장은 이러한 거래를 통해 창출된 벤더들의 압도적인 장부상 수익과 잉여현금흐름을 기반으로 전례 없는 밸류에이션을 부여하고 있으나, 이 매출의 회계적 정당성과 경제적 실재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가려져 있다. 펀더멘털이나 엔드유저의 실질적 효용 창출 능력이 아니라, 거대 자본의 스폰서와 시장의 기대감에 의존해 창출되는 이러한 매출을 붕괴의 전조로 경계해야 한다.
뫼비우스 띠
이러한 자기 순환적 거래는 크게 세 가지 패턴이다.
첫 번째 - 공급자가 고객에게 자본을 제공하는 거래
가장 빈번하게 관찰되는 형태는 하드웨어 공급자나 클라우드 제공자가 고객사(주로 AI 스타트업)에 지분 투자나 대출 등 자본을 제공하고, 고객사가 동일한 혹은 그 이상의 자금으로 공급자의 칩이나 클라우드 서비스를 대규모로 구매하는 벤더 파이낸싱 형태다.
엔비디아가 xAI, 코어위브 등 핵심 고객사들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엔비디아는 ‘26년 비상장 기업 및 AI 인프라 펀드에 무려 175억 달러를 투자하였고, 투자잔액은 222억 5천만 달러로 폭증했다. 최근까지도 오픈AI의 1,222억 달러 라운드에 300억 달러를 출자했다.
코어위브는 엔비디아로 20억 달러를 유치하며, 2030년까지 5기가와트 규모의 AI 팩토리를 구축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최신 Rubin 플랫폼과 Vera CPU, BlueField 스토리지 시스템을 선도적으로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그 직전인 '25년 9월, 엔비디아는 별도 계약으로 '32년 4월까지 코어위브의 미사용 컴퓨트 용량을 최대 63억 달러까지 매입하기로 약정한 상태였다. 자본은 엔비디아에서 코어위브로, 매출은 코어위브에서 엔비디아로 흐른다. 코어위브 측은 이번 20억 달러 현금이 엔비디아 칩 구매에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자금의 대체가능성을 고려하면 실질은 동일하다. 어떤 명목으로 들어왔든, 코어위브의 재무제표를 거친 현금은 결국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 라인에 도달한다.
회계적 관점에서 공급자의 지분 투자 거래와 고객의 제품 구매 거래가 법적으로 완벽히 분리된 별개의 계약서로 작성되었다 하더라도, 실질주의 원칙에 따라 하나의 거래 성립이 다른 거래를 암묵적으로 조건부화하는 구조라면 두 거래는 결합되어 평가되어야 한다. 이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면, 고객에게 유입된 투자금액 중 해당 지분의 공정가치를 초과하는 금액은 독립적인 투자 자산이 아니라 고객의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지급한 대가 혹은 리베이트로 간주된다. 비상장 스타트업 지분의 공정가치를 신뢰성 있게 추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보수적으로 투자금 전액이 매출 차감 대상으로 볼 수도 있다.
두 번째 - 장기 컴퓨트 계약이 매출로 인식되는 거래
두 번째는 클라우드 사업자가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사로부터 다년에 걸친 수백억 달러에서 수천억 달러 규모의 컴퓨트 사용 약정을 받아내고, 이를 재무제표 주석에 잔여이행의무 혹은 수주잔고로 공시하며 장래 매출로 잡는 방식이다.
오라클과 오픈AI의 계약이 대표적인데 오라클은 오픈AI와 '27년부터 시작되는 5년간 총 3,000억 달러(약 400조 원) 규모의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 계약 직후 발표된 분기 실적에서, 오라클의 수주잔고(RPO)는 전년 동기 대비 359% 폭증한 4,550억 달러를 기록했고, 두 분기 뒤인 FY26 Q3에는 다시 5,530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현재 오픈AI의 ARR은 약 250억 달러 수준인 반면, 오픈AI가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아마존 AWS 등 여러 클라우드 파트너에게 약정한 인프라 컴퓨트 비용의 합계는 향후 수년간 연간 600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픈AI가 수천억 달러의 약정을 이행할 현금 창출 능력이 적어도 근시일 내에는 없다.
회계 원칙은 고객이 약속된 대가를 지급할 능력과 의도가 있어 대가의 회수 가능성이 높아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약정의 이행 자금이 고객의 자생적인 영업 현금흐름이 아닌, 미래의 추가적인 펀드레이징에 종속되어 있다면, 해당 계약은 회계기준이 요구하는 실질적 계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리스크를 안고 있다.
오픈AI가 추후 자본 시장의 경색이나 기업 가치 고평가 논란으로 인해 후속 펀딩에 실패하여 위약 상황에 놓일 경우, 오라클이 장부에 쌓아둔 수주잔고 중 절반 이상은 종이조각이 된다. 표면적인 매출 가시성과 실제 고객의 현금 지급 능력 사이의 간극이 장기 계약이 숨기고 있는 가장 큰 리스크다.
세 번째 - 클라우드 크레딧
세 번째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모델 개발사에 대규모 지분 투자를 집행할 때, 투자 금액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을 현금이 아닌 자사 클라우드 크레딧 형태로 지급하는 구조다. 외형상으로는 투자의 형태를 띠지만, 실제로는 자사 인프라에 대한 종속성을 강화하고 미래의 자사 매출을 선확보하는 마케팅 활동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에 집행한 투자, 아마존과 구글이 앤스로픽에 수십억 달러 규모로 참여하며 각각 AWS와 GCP TPU 사용을 의무화한 거래가 그러하다. 오픈AI가 1,222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한 라운드의 앵커 투자자는 아마존(500억), 엔비디아(300억), 소프트뱅크(300억) 등 핵심 하드웨어 및 클라우드 벤더들이었으며, 이들 SI가 전체 라운드의 약 90%인 1,100억 달러를 담당했다. 나머지 약 120억 달러만이 a16z, T. Rowe Price, MGX, TPG, 개인투자자 등으로 구성되었다. 즉 이 라운드의 자본 대부분은 향후 클라우드와 칩 구매로 다시 환수될 조건부 성격을 띠는 것이다.
이 거래의 결과로 모델 회사에 부여된 클라우드 크레딧은 모델 회사가 컴퓨팅 파워를 소진할 때마다 클라우드 사업자의 클라우드 매출로 환산되어 계상된다. 무형의 크레딧을 발행하여 타사의 지분을 취득해 자산화하고, 다른 쪽 끝에서는 그 크레딧이 소진되는 과정을 현금 기반의 매출 발생처럼 손익계산서 상단에 올려 클라우드 사업부의 고성장을 보장하는 것이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분기마다 발표하는 수십 퍼센트의 AI 클라우드 매출 성장률 가운데, 과연 어느 정도가 순수한 제3자 시장의 유기적 수요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가 자사가 발행한 크레딧이 매출로 회수되면서 발생한 자기순환적 수익인지 재무제표만으로는 분리해 낼 방도가 없다.
약한 고리
AI 산업 내 복잡한 자본 흐름은 무한한 자본 조달 환경과 하드웨어 성능의 끝없는 향상이라는 두 가지 가정을 전제로 굴러가고 있는데, 연쇄적인 충격을 가할 4개의 가장 약한 고리는 다음과 같다.
Trigger 1: 엔비디아의 비상장 투자와 고객 집중도
엔비디아의 최대 고객은 연간 매출의 22%를, 그 다음 고객이 14%를 차지하며, 두 고객만으로 연간 매출의 36%를 차지한다. 특히 FY26 Q3에는 4개 고객사 매출이 분기 매출의 61%를 차지했다.(데이터센터 부문은 FY26 매출 1,937억 달러로 전체 매출의 90%)
엔비디아의 급증한 지분투자와 집중된 매출처가 같은 곳인지 여부에 트리거가 있다. 만약 상위 고객의 매출 비중이 더 높아지거나, 엔비디아가 집중적으로 투자한 핵심 스타트업 및 클라우드 업체 명단이 매출 상위 고객사 명단과 사실상 동일하다면 투자 심리는 급변할 수 있다.
이 경우, 당국은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고객 지급 대가의 순액 인식 요건에 대해 한층 강도 높은 기준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시장은 매출 성장을 순수한 유기적 외부 수요가 아닌, 자기 자본이 순환하는 투자금 회수 사이클로 디스카운트하여 재평가하게 될 것이다.
Trigger 2: 하이퍼스케일러의 감가상각 이연
현재 빅테크와 하이퍼스케일러들은 AI 인프라 투자 비용이 영업이익을 깎는 것을 막기 위해, 서버 및 네트워크 장비의 내용연수를 현실과 다른 수준으로 연장해놓고 있다. 영화 '빅쇼트'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Burry의 분석에 따르면, 이들은 당초 3-4년으로 적용하던 장비의 내용연수를 5년에서 최대 6년까지 상향 조정했다. 이는 엔비디아가 Hopper('22년), Blackwell('24년), Rubin('26년)으로 2년 단위 메이저 아키텍처에 중간 리프레시(Blackwell Ultra)까지 끼워넣으며 전력 효율과 유지비 측면에서 하드웨어의 실질적 수명을 18-36개월 이내로 단축시키고 있는 현실과 모순된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Satya Nadella조차 2025년 11월 CNBC 인터뷰에서 "한 세대 칩에 4-5년치 감가상각이 묶여버리는 상황을 피하고자 했다"고 토로할 정도로 기술의 진부화 속도는 회계 기준보다 빠르다.
Burry의 추산에 따르면, 이러한 회계 방식으로 인해 ‘26년부터 ‘28년까지 3년간 하이퍼스케일러 전체적으로 무려 1,76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감가상각비가 과소 계상될 수 있으며 '28년 오라클의 영업이익은 26.9%, 메타의 영업이익은 20.8%나 과대 포장된다.
물리적 전력 한계와 성능 고갈로 인해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어쩔 수 없이 장비의 감가상각 정책을 현실적인 3-4년으로 되돌리도록 강제받게 되면, 영업이익이 급감한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즉각적으로 신규 데이터센터 구축을 지연시키고 Capex 가이던스를 대폭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다.
Trigger 3: AI 스타트업 펀딩 라운드 실패와 초장기 컴퓨트 약정의 연쇄 부도
오픈AI를 위시한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사들은 연간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클라우드 인프라 사용료를 지불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본 시장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인프라 비용 대비 엔드유저로부터 창출되는 실질 수익의 속도가 지지부진한 경우, 대형 AI 스타트업들의 후속 펀딩이나 목표로 했던 IPO가 기대한 밸류에이션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하거나 다운라운드를 겪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아마존 AWS에 약속했던 수천억 달러 규모의 장기 컴퓨트 계약 대금을 지불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실제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오라클 아빌린 캠퍼스부터 잡음이 나오고 있다.
하나의 상징적인 스타트업이 디폴트에 빠지면, 시장은 즉각적으로 장부에 기록해둔 장래 매출에 대한 실질성 검증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실질이 부인되어 수천억 달러의 미래 매출이 증발하게 되면, 빅테크 클라우드 사업부의 가치가 붕괴하며 주가와 신용 등급에 치명타를 입히고, AI 스타트업 연쇄 부도의 신호로 작용하게 된다.
Trigger 4: 모델 가격의 추락과 단위 경제성의 완전한 역전
현재 AI 생태계는 추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알고리즘과 칩 기술의 발전이 역설적으로 서비스 제공자들의 목을 조르는 결과를 낳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토큰당 API 가격의 맹렬하고 지속적인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픈AI, 앤스로픽, 구글 간의 치열한 점유율 경쟁과 메타의 LLaMA와 같은 강력한 오픈소스 모델의 지속적인 배포는 AI 지능의 범용화를 가속하며, 모델의 한계 가치를 0으로 수렴시키고 있다.
컴퓨트 비용은 앞서 맺은 장기 약정에 의해 픽스 되어 있는데, 산출물인 모델의 API 판매 가격은 하방으로 뚫려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단일 쿼리나 서비스 토큰을 처리할 때마다 이익이 나기는커녕 손실이 누적되는, 즉 공헌이익이 장기간 음수에 머무는 불균형이 '27년 하반기까지 고착화된다면, 파운데이션 모델 회사들은 기업으로서 자생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마진 압박이 심해지면 AI 스타트업들은 파산을 면하기 위해 다시 한번 클라우드 제공자나 칩 제조사의 추가적인 지분 투자나 벤더 파이낸싱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자본 회로의 자생력 상실과 공급자 의존도는 더 심해진다.
이 네 균열은 독립적이지 않다.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핵심 투자 대상 명단과 매출 상위 고객사 명단의 일치 여부에 대한 의심이 퍼지면, 데이터센터 매출 성장률에 자기순환 디스카운트를 적용하기 시작한다. 그 후 칩을 자산으로 잡고 있던 하이퍼스케일러의 감가상각 정책이 곧장 시장의 시야에 들어온다. 5-6년으로 늘려둔 내용연수가 현실적으로 조정되면, 빅테크의 영업이익은 두 자릿수가 깎인다. 신규 데이터센터 가이던스가 하향되는 그 분기,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와 AI 기업들의 다음 라운드는 동시에 가시성을 잃는다. 어느 모델 개발사 한 곳의 펀딩 실패가 신호탄이 되면, 클라우드 사업자들의 수주잔고는 재검토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API 시장의 가격 경쟁은 무자비하게 진행되고 있다. 뫼비우스 띠 어느 한 지점에서 자본이 멈추면 다른 지점의 매출도 멈추는 꼴이다.
현실의 시간
2000년 12월 21일, 무디스는 1990년대 후반 글로벌 광통신 인프라 투자의 최대 수혜 기업이자 통신 장비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루슨트 테크놀로지스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신생 통신사들에게 제공했던 벤더 파이낸싱 대출이 연쇄 부실화되고, 장부상 매출이 실제 영업현금흐름으로 이어지지 않는 심각한 유동성 경색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통신 장비 제국의 붕괴가 시작되었지만, 당시 그들의 기술 자체가 허구인 것은 아니었다. 이때 전 세계에 구축한 광섬유 네트워크가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의 기반이 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인프라를 단기간에 구축하기 위해 동원된 기형적 자본 구조에 있었다. '수익 인식과 현금 회수 사이의 간극', 그리고 '공급자가 자본을 빌려주어 고객의 구매력을 억지로 창출해낸 벤더 파이낸싱 구조'는 애초에 지속 불가능했다. 외부 유동성 경색이 도래하자 신생 통신사들이 대금을 상환하지 못했고, 이는 결국 70억 달러 규모의 일시 상각과 기관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로 귀결되었다.
2026년 현재 시장을 주도하는 AI 인프라 기업들 역시 분명히 실체가 있는 기술들이다. 하지만 자본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출발점의 매출로 돌아오는 구조, 고객이 아닌 다음 라운드에 기댄 수요, 그리고 회계장부 위에서만 늦춰지는 진부화는 20년 전 통신 장비 시장에서 벌어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